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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귀가하다가 공기에 실려온 냄새를 맡았다.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 본 냄새인데. 뭐였더라?
테이코 농구부의 방과 후 연습이 끝나고 아카시를 제외한 모두가 하드를 하나씩 입에 물었다. 키세의 환영식 이후로 어쩐지 자주 편의점 강제모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역시나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왜 오늘도 제가 사게 되는검까! 뭐 어때, 모델이잖냐. 돈도 벌면서. 동료만 아니면 때려주고 싶은 말을 태연하게 내뱉으면서 아오미네와 키세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리의 전방을 차지했다. 가장 먼저 떨어져 간 사람은 뜻밖에 모모이였다.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고 분홍색 폴더폰을 열어 전화를 받더니 가족 외식이 생겼다며 시내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그다음은 무라사키바라와 미도리마. 쿠로칭- 미도칭- 미네칭- 그럼 내일 봐-. 무라사키바라가 마이우봉 포장을 뜯다가 손을 흔들었고, 미도리마는 짧은 작별인사만 무뚝뚝하게 건넨 뒤 제 갈 길로 멀어졌다.
그때였다. 봄비가 내린지도 한참인 5월 중순의 밤에 어떤 향기가 전해져 온 것은.
뭐야, 이거? 아오미네는 고개를 조금 들고 킁킁대며 이 향기가 무엇인지 호기심을 보였다. 키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아오미네가 말하는 걸 알아듣고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해 보려고 한다. 에-그게- 아오미넷치, 그, 쌀 색깔 하얀 꽃이 주렁주렁 달린 거 있지 않슴까, 그러니까-
"아카시아입니다."
키세가 그 단어를 듣고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일 때 아오미네는 쿠로코의 파란 눈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아카시아."
자신은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덕분에 이름을 외웠다. 길가든 주택의 마당이든, 향기가 날 만한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아오미네는 아직 아카시아가 어떻게 생긴 식물인지 몰랐다. 나무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 뒤로 찾아본 적이 없어서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흰 꽃이라는 단서만은 분명히 기억했다. 아무리 눈동자를 굴려 봐도 시야에 들어오는 꽃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강렬하게 밤하늘을 채운다. 공기가 습했다. 꽃향기는 습기를 타고 더욱 진해졌다. 아오미네는 오늘 낮에 마지막으로 봤던 쿠로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가 모두 즐거웠던 시절, 농구를 할 때면 미소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시절, 지금은 다른 동료와 다른 유니폼을 입고 다른 빛을 찾아 다른 농구를 하는. 너.
하지만 이제는 나란히 갈 수 없다. 한 번 겹쳐졌다가 돌아보지 않고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아오미네는 제일 먼저 다른 누구도 아닌 쿠로코를 시선으로 쫓아 찾았다. 행복해 보였다. 차마 저 사이를 끼어들어 쿠로코에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손이 뭔가를 움켜잡으려는듯 슬쩍 들려서 움찔거렸다가, 뼈와 힘줄이 두드러질만큼 주먹이 꽉 쥐였다. 둘의 시선이 마주칠 법도 하지만 그러기 전에 아오미네는 고개를 돌려 대기실로 성큼성큼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쿠로코가 자신의 뒷모습을 조금은 쓸쓸하게 바라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그도 손을 내밀으려다 거뒀을 것이다. 설탕시럽이 잔뜩 굳어져 잔잔히 바스러지는 서먹함. 두 손에는 이미 각자의 길이 들려져 있어서 닿기에는 뻗지도 못했다.
그래도-
존재감이 뭐란 말이야. 아오미네에게 쿠로코는 이 밤길의 아카시아였다. 보이지 않을지라도 가장 강하게 모든 감각을 끌어당긴다. 후각을 마비시킬 것 같은 향기가 연쇄처럼 시각을 이끌어왔다. 연한 바다색의 곧잘 뻗치는 머리카락이, 잔잔하지만 가끔 놀랄만큼 불같은 열정을 보이는 눈이, 모든 힘을 다해서 뛰는 몸짓이. 그래도,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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